협상의 용어 중에 Shadow of Futur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미래의 그림자 정도로 번역하겠습니다.
협상 중에 1회성 협상이 있고, 반복적인 협상이 있습니다. 1회상 협상은 한번 보고 다시 볼 일이 없는 경우입니다. 다시 오기 어려운 낮선 곳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벌어지는 흥정일 경우, 즉 뜨내기 손님으로서 흥정할 경우를 대표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복적인 협상이란 이번 협상은 일단 끝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런저런 협상을 다시 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협상입니다. 상대방을 다시 볼 일이 있는 경우죠. 사실 많은 경우, 어쩌면 좀더 광의로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 대부분의 경우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상대방이 이익을 보던 손해를 보던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협상 방식은 1회성 협상에서는 논리적으로 이해할만 합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협상의 경우에도 매번 협상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 무조건 합리적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개념이 Shadow of Future입니다. 상대방에게 과거 또는 현재에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안겨준 적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그림자로서 나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당장의 협상 결과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라 아니라 전체의 협상의 양상과 결과를 어떻게 리드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입니다.
반복적인 협상이 상호간의 이익을 창출해 가면서 원할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협상 종료후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가령, 이용당했다, 착취당했다, 속았다, 너무 많이 빼앗겼다 등등)을 안 품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사는 예측할 수 없어서 오늘 보고 내일 안 볼 것 같은 사람도 다시 보는 경우가 많고, 또 중요한 일로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울러 서로의 입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어서 어제 칼날을 잡아야 했던 약자가 내일에는 칼자루를 쥔 강자로 변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논리를 중요시 하지만, 어쩌만 그보다 훨씬 더 감정의 동물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반복적인 협상 과정이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느끼는 신뢰와 믿음과 연대의 의식은 눈 앞에 조금 더 가져온 단기적 이익보다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당장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궁박을 이용해서 (또는 내가 칼자루를 쥐고, 상대방을 칼날을 쥔 협상 구조하라고 해서) 상대방에게 지나친 피해를 주면서까지,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협상 태도는 많은 경우 근시안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당장 그 사람과는 미래에 다시 안 볼지 몰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나에 대한 나쁜 평판이 확대될 수도 있고 그 또한 어쩌면 광의의 연속되는 협상에서 Shadow of Future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협상론에서 나온 용어다 보니 협상에 관련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는 협상을 떠나 우리 일상사에서 수도 없이 적용되는 삶의 원칙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만남에서 또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경우 스스로는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몇 번 겪어보니까 이 사람, 너무 자기 것만 챙기려 하고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네”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엔가 부메랑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이용당하고 사기당하고 할만큼 방심하고, 대충대충 협상하자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성실하지 않고 진지하지 않은 협상 태도는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엄청난 양보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협상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정은 조금 tough하고, 결과적으로도 상대방에게 많은 양보를 하지 않았더라도, 양자 모두 협상에 최선을 다해서 상호간에 plus sum을 만들고 이를 나누어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면, 협상 파트너도 협상에 대해 보람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협상은 공부하고 고민하면 할수록 plus sum game을 만들 수 있는 여지도 많고,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할 여지도 많습니다. 상대방의 이익을 해하지 않고도 나의 이익을 높일 수 있은 방법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창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철저하게 사전 분석하고 치열하게 줄다리기 하더라도, 협상 과정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어느 정도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헛된 노력은 없고, 공짜로 얻는 이익도 없으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나에 대한 배려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