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수많은 협상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필자가 2000년대 초반 외국에서 MBA할 때 선배들 또는 동기들이 선택 과목 중에 이 과목은 꼭 듣고 졸업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과목이 있었는데 그게 협상론이었습니다. 마침 저희 학교 교수님 중에 협상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의 강의를 많이 추천했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 남자가 그러듯이 영어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특히 협상론은 강의를 듣는 것 외에 학생들간 모의 협상도 많이 해야 하는 등, interaction이 많아 더 부담을 느끼긴 했지만 강의 선택을 했습니다. 나중에 졸업후 직장 생활을 해 보니 왜 선배들이 그 과목을 많이 추천했는지 이해가 갈 만 했습니다.
Ingemar Dierikx 교수님이라고 벨기에 출신 교수님이셨는데, 연세가 조금 있으시고, 항상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 입으시고 점잖게 (그러면서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우리 나라와 달라 외국의 경우 교수님들이 강의 시간에 대체로 편하게 옷을 입으시고, 교수님과 학생간 호칭도 서로 first name(ex. Tom, David)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교수님은 전략 분야에서도 많은 유명한 논문들을 쓰신 분이었습니다만, 본인이 협상론을 주 전공으로 택한 이유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산업구조가 변해 감에 따라 계속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고, 새로운 것을 새로 배워가면서 따라 가야 하는데, 협상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크게 편하지 않는 한 협상의 모양과 원리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상론에도 머리 아프게 만드는 매우 기술적이고 복잡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만(저도 대부분 기억나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그 수업에서 배운 것 또는 나중에 실전 협상에서 경험하고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내용 또는 협상 스타일을 하나씩 하나씩 여러번 나누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참고로 제가 그 교수님의 모든 강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해서 그대로 적을 수도 없고, 일부는 제 경험과 주관이 가미될 수 있다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상호 신뢰감이 있고, 서로가 협상을 통해 합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하고 직관적인 내용이지만 놓치는 경우가 있는 내용입니다. 협상 과정에 임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고 협상의 합의를 통해 win-win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협상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낮다면, 적어도 합의할 경우 가져갈 이익이 가시적으로 보이거나, 합의가 안 되었을 경우에 벌어질 위협이 크게 인식된다면 그나마 협상을 통해 합의하고자 의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협상과 합의 의사는 없는데 어떤 이유이건 협상 하려는 모양만 취할 때 실질적인 협상과 합의는 매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시로 상대방의 합의 의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FTA 협상들을 개시할 때 항상 협상의 전제로 Mutual Trust(상호 신뢰)라는 말을 서로 굉장히 많이 씁니다. 왜 이런 상투적인 말을 반복할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협상시 상호 신뢰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인 것 같습니다.
일례로, 2005년~2006년 ASEAN 10개국과 FTA 협상을 했었는데 ASEAN 여러 나라들과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한-ASEAN과 FTA 협상을 타결하고, FTA를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아세안 10개국 중 태국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끝내 FTA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태국의 경우 그 때 ASEAN 국가의 하나로서 협상 자체에 빠지는 것은 모양에 어긋나 협상에 참여했습니다만, 애초부터 우리나라와 FTA 체결을 통해 잃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많지 않다고 보고, FTA를 체결하고 싶은 의지가 크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외에도 실제 협상을 많이 해 보신 분들은 협상의 전제로서 상호 신뢰와 협상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체로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