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학자들이 만든 말이지만, 경영 실무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이 핵심역량(Core Competence, Core Competency, 또는 Core Capabilities)입니다. 지난 번에 언급한 경영학을 흐름을 형성한 유명한 경영학자 중 Gary Hamel과 C.K. Prahalad이 1990년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는 “시장에서 어느 기업을 다른 기업과 구별하게 만드는, 복수의 자원과 기술의 조화된 결합”이고 따라서 “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고 정의됩니다. 좀 더 쉽게 정의하면 “기업의 여러 가지 경영자원 중 경쟁기업에 비하여 훨씬 우월한 능력, 즉 경쟁우위를 가져다 주는 기업의 능력“입니다(장세진 [경영전략]). 이러한 핵심역량은 기업 내부적으로 다른 기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하는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핵심역량은 오랜 시간에 걸쳐 기업의 다양한 경영활동(activity)과 노력을 통해 축적되는 저량(stock)의 개념입니다.
핵심역량의 개념을 직관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욕조 모형(Bathtub model)입니다. 바닥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 욕조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욕조에 남아있는 물이 핵심역량인데, 이는 많은 시간에 걸쳐서 수도물을 받아서 축적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밑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하는 여러가지 활동과 노력, 가령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 마케팅과 브랜딩, 원가절감 노력, 인재 육성, 경영제도 개선 등 여러 가지 꾸준한 활동들이 핵심역량을 증가시키는 수도물의 유입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기업의 경우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경영자원의 손실 또는 훼손을 초래하는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있으며, 이는 욕조의 구멍으로 작용하여 수도물의 유출을 초래합니다.
어느 한 시점에 욕조에 저장된 물의 양이 그 기업의 핵심 역량 수준을 나타내는데,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물을 얼마나 공급했느냐와 구멍을 통한 누출을 얼마나 막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물 유입의 양이 유출의 양보다 클 경우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핵심역량은 증대되는 것이며, 물 유입보다 유출의 양이 클 경우에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오히려 그나마 있던 핵심역량은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업이 핵심역량 축적에 유용한 기업의 경영활동을 얼마나 꾸준히 하는가와 불가피한 속성은 있지만, 누수를 얼마나 줄이는가에 기업의 핵심역량 수준, 그리고 기업의 경쟁우위, 결국 기업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핵심역량은 대부분 무형적인 경우가 많아 시장에서 돈 주고 간단하게 구매하거나, 빠른 시간내에 쉽게 축적하거나, 경쟁자가 쉽게 모방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누수 요인은 별도로 하면, 핵심역량의 큰 위협요소(위의 그림으로 비유하면 욕조 바닥 구멍의 크기를 늘리는 요인) 중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대체(substitution), 빼앗김(hold-up), 느슨함(slack)입니다. substitution은 경쟁자의 모방이나 기술적 대체재의 출현으로 수요를 잃어가는 것이고, hold-up(적나라하지만 말 그대로 강도가 ‘손들어’ 하고 돈을 뺏어 가는 것으로 연상하면 좋을 듯합니다)은 창출한 가치를 value chain내의 힘이 쎈 다른 플레이어들(공급업체건, 고객이건, 등등)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우리말로 속칭 죽 쒀서 누구 주었다는 것이죠). slack은 내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거나, 전략과 조직의 궁합(fit)에 맞지 않게 쓸데 없는데 쓰는 경우이며(군대에서 겨울 야간 산악 행군을 할 때 열심히 갔는데 나중에 보니 이 산이 아닌가봐 하고 산을 다시 내려 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slack은 또한 조직이 자아도취에 빠져 해이 해지는 경우도 포함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들 중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런 좋은 영화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등 공신들이 뛰어난 영화 배우인들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들 중에는 어디에서 나타났나 싶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빛을 발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배우의 이력이 궁금해 찾아 보면, 연극 무대에서 몇 년 또는 몇 십년 정말 hungry하게 무명생활을 하고, 그 사이 온갖 고생을 다 해 본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외모 또는 일부 행운에 의해 갑자기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부침이 많은 반면, 이런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낸 배우들은 오래가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 기반은 그동안 남 몰래 축적한 욕조의 물, 즉 핵심역량, 더 쉽게 표현하면 내공의 힘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욕조의 물 개념으로 보면 핵심역량이라는 말은 참 희망적인 개념입니다. 오랜 동안 꾸준히 남보다 노력하고, 방만하거나 허튼 짓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또 요즘 세상을 보면, 역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다 남들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냐,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냐 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성공이 필연관계는 아니더라고 확률적으로 상당 수준의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의 게임의 룰, 즉 시스템, 제도들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